“우리 팀은 서로 성향이 너무 달라요.”
팀워크에 문제가 생겼을 때 자주 듣는 말이다. 회의에서 자꾸 부딪히고, 업무가 지연되고, 서로에게 불만이 쌓이면 우리는 가장 먼저 ‘사람’을 원인으로 지목한다. 저 사람은 소통 방식이 문제다, 책임감이 부족하다, 성격이 맞지 않는다는 식이다. 그래서 팀워크 교육에서도 서로의 성향을 이해하거나 관계를 개선하는 데 많은 시간을 쓴다.
물론 관계는 중요하다. 그러나 정말 관계가 먼저 문제였을까.
팀의 효과성을 설명하는 GRPI 모델은 이 질문에 조금 다른 답을 제시한다. GRPI는 Goal(목표), Role(역할), Process(프로세스), Interpersonal Relationship(대인관계)의 네 요소를 통해 팀의 상태를 살펴보는 틀이다. 이 모델에서 눈여겨볼 점은 순서다. 관계가 가장 마지막에 놓여 있다. 팀에서 발생하는 관계 갈등 중 상당수는 그보다 앞선 목표, 역할, 프로세스가 충분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G, Goal – 우리는 정말 같은 목표를 보고 있는가
“이번 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뭡니까?” 팀원들에게 따로 질문했을 때 모두 다른 답을 한다면 어떨까. 팀장은 성과를 이야기하고, 실무자는 일정 준수를 이야기하며, 다른 구성원은 민원 최소화를 이야기할 수 있다. 모두 열심히 일하고 있지만 각자 다른 결승선을 향해 뛰고 있는 셈이다.
목표가 불분명한 팀에서는 의견 차이가 쉽게 사람 간 갈등으로 변한다. 서로 다른 기준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팀의 문제가 생겼을 때 가장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은 “누가 문제인가?”가 아니라 “우리가 이루려는 결과를 모두 같은 의미로 이해하고 있는가?”이다. 목표는 슬로건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이 자신의 업무 우선순위를 판단할 수 있을 만큼 구체적이어야 한다.
R, Role – 그 일은 도대체 누가 하는 것인가
회의에서는 분명히 결정했는데 며칠 뒤 아무도 일을 시작하지 않았다. 확인해보니 A는 B가 하는 줄 알았고, B는 팀장이 다시 지시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조직에서 의외로 자주 일어나는 장면이다.
역할이 모호하면 업무의 빈틈이 생기고, 그 빈틈에는 곧 감정이 들어선다. “왜 나만 하지?”, “그것도 내가 해야 하나?”, “저 사람은 책임감이 없어”라는 생각이 쌓인다. 처음에는 역할의 문제였지만 어느새 사람에 대한 평가가 된다. 역할을 명확히 한다는 것은 업무를 나누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누가 책임지고, 누가 지원하며, 어디까지 결정할 수 있는지를 합의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P, Process – 열심히 하는데 왜 자꾸 일이 꼬이는가
목표도 알고 역할도 정했는데 일이 매끄럽지 않은 팀이 있다. 회의에서 결정한 내용이 자꾸 뒤집히고, 보고 단계가 지나치게 많거나 중요한 정보가 일부에게만 전달된다. 급한 일이 생길 때마다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지 몰라 시간이 지체되기도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프로세스다. 회의는 어떻게 할 것인지, 정보는 어디에서 공유할 것인지, 의견이 다를 때 누가 어떤 기준으로 결정할 것인지와 같은 ‘함께 일하는 방식’이다. 좋은 프로세스는 사람을 통제하기 위한 규칙이 아니라 사람들이 불필요한 에너지를 쓰지 않고 일하도록 만드는 약속에 가깝다.
I, Interpersonal Relationship – 그제야 관계를 들여다본다
목표도 분명하고 역할과 프로세스도 정리했는데 여전히 문제가 반복된다면 이제 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서로 신뢰하는가, 다른 의견을 안전하게 말할 수 있는가, 실수했을 때 비난보다 해결을 먼저 이야기하는가, 갈등이 생겼을 때 사람과 문제를 구분할 수 있는가가 중요해진다.
여기서 GRPI가 주는 중요한 통찰이 있다. 좋은 관계가 좋은 팀을 만드는 것만은 아니다. 함께 일할 수 있는 구조가 좋은 관계를 만들기도 한다. 누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분명하고, 의사결정 기준이 공정하며, 정보가 투명하게 공유되는 팀에서는 불필요한 오해와 감정 소모가 줄어든다.
그래서 팀에 문제가 생겼을 때 리더가 곧바로 “서로 소통을 잘합시다”라고 말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회식을 늘리거나 팀빌딩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전에 한 단계 아래의 문제를 살펴봐야 한다. 관계가 불편하다면 프로세스를, 프로세스가 꼬여 있다면 역할을, 역할을 두고 충돌한다면 목표를 거슬러 올라가 점검해보는 것이다.
특히 리더가 경계해야 할 것은 구조의 문제를 사람의 문제로 해석하는 것이다. 목표를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은 채 구성원의 주도성이 부족하다고 평가하고, 역할을 제대로 나누지 않은 채 책임감을 요구하며, 의사결정 기준을 만들지 않은 채 소통 부족을 지적한다면 팀의 갈등은 해결되기 어렵다.
좋은 팀워크는 단순히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아니다. 같은 목적지를 바라보고, 자신의 역할을 알고, 함께 일하는 방법에 합의하며, 그 토대 위에서 서로를 신뢰하는 것이다. 관계는 중요하지만 관계만 고쳐서는 팀이 달라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팀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다고 느껴진다면 사람들의 표정부터 살피기 전에 네 가지 질문을 던져보자. 우리의 목표는 충분히 명확한가. 각자의 역할과 권한은 분명한가. 함께 일하는 방식에 합의되어 있는가. 그리고 서로 안전하게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가.
어쩌면 지금 우리 팀에 필요한 것은 더 친해지는 시간이 아니라, 함께 일하기 위한 기본을 다시 맞추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 필자 소개 ]

조혜원 칼럼리스트
현장에서 쌓은 경험과 교육 전문성을 바탕으로 조직과 리더의 성장을 지원하는 교육·리더십 전문가입니다.
LG전자와 SKT에서 사내 강사로 활동했으며, 개인·조직 코칭을 통해 지속적인 변화와 성장을 촉진하는 데 힘쓰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