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L-2S-3P-W 8단계 위기 및 자살 예방 개입 전략 모델 제시
(이미지 제공=KCS NEWS)
(KCS NEWS=주민정 편집국장)김보미 박사는 비영리법인 축복봉사단과 대한인식생명교육 사회적협동조합의 대표로 10년 넘게 자기살해·고독사 예방 현장을 지켜온 위기개입 전문가다. 김 박사는 최근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에 기반한 8단계 위기개입 모델을 담은 박사학위논문을 발표했다.
정신분석학전공 김보미 박사(지도교수 강응섭, 공동지도교수 이유섭)는 2026년 8월 「자기살해 예방을 위한 정신분석적 위기 개입의 단계별 사례연구(DL-2S-3P-W 8단계 모델 중심)」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논문은 240명 이상의 고위험군 상담 경험 중 7건의 사례를 선별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분석하고, 이를 근거로 현장에서 즉시 적용 가능한 8단계 위기개입 모델을 제시했다.
◆왜 지금 8단계 모델인가
논문에 따르면 보건복지부 자살유발정보 모니터링단이 2024년 신고받은 자살유발정보는 40만 136건으로, 2019년(3만 2,588건) 대비 5년 사이 12배 이상 늘었다. 김 박사는 10년 전과 비교해 자기살해 위기자가 줄지 않는 현실을 목도하며, 상담자나 생명사랑지킴이(게이트키퍼)가 위기 개입 방법을 알지 못하거나 알아도 자세한 방법을 오인해 죽음에 이르는 상황을 반복해서 마주했다고 밝혔다. 이것이 더 체계적이고 접근하기 쉬운 위기개입 단계를 연구하게 된 계기다.
◆DL-2S-3P-W 8단계 모델이란
모델명은 각 단계의 핵심 전략을 영문 앞 글자로 딴 것으로, 개인 차원의 개입 7단계와 사회적 차원의 확장 1단계로 구성된다.
① 초기 긴급 위기개입: DL (1~2단계)
• 1단계 D(Direct Question, 직접 질문): 자살 의도를 모호하게 돌려 말하지 않고 직접적이고 명확하게 질문해 위험성을 구체적으로 진단하는 단계
• 2단계 L(Listening Closely, 근접 경청): 내담자의 고통에 공감하며 세밀하게 귀 기울여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하는 단계
② 안전 확보 및 지지 체계 구축: 2S (3~4단계)
• 3단계 S(Safety, 안전 확보): 물리적 환경에서 자살 수단을 분리해 신체적 안전을 보장
• 4단계 S(Support, 지지 구축): 정서적·사회적 지지 기반을 제공해 내담자가 혼자가 아님을 인지시키는 단계
③ 사후 관리 및 회복: 3P (5~7단계)
• 5단계 P(People-helper): 전문가 또는 주변 조력자와의 연결
• 6단계 P(Psychological Follow-up Management): 심리적 사후관리
• 7단계 P(Physical Health Follow-up): 신체적 손상 복구 및 건강 회복 관리
④ 사회적 확장: W (8단계)
• 8단계 W(Welfare System): 개인 차원 개입을 넘어 공동체·사회 환경의 변화를 도모하는 최종 단계로, 지속적인 연구와 지원이 이뤄지는 사회적 위기개입 단계다.
논문은 1~2단계를 "응급 개입 단계", 3~7단계를 "지속적 개입 단계"로 구분했으며, 각 단계는 순서가 고정된 절차가 아니라 생존이라는 목표에 맞춰 전문가 판단에 따라 유연하게 조정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정신분석학적 근거 — 죽음충동과 삶충동
김 박사는 프로이트의 죽음충동(Thanatos)·삶충동(Eros) 개념을 위기개입 각 단계에 접목했다. 1단계의 직접 질문은 분석가가 내담자의 파괴적 죽음을 직면하겠다는 '경청의 계약'을 체결하는 상징적 발화이며, 대상을 향해야 할 리비도가 자아로 철수해 자기파괴적 죽음충동과 결합한 상태에 균열을 내고 외부와의 연결을 재개하는 시도로 해석된다. 2단계의 근접 경청 역시 상담자와 내담자 사이의 무의식적 거리를 좁히려는 과정으로, 내담자의 자아를 지탱하는 심리적 부목(splint)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성공 기준과 사례 검증
논문은 위기개입 8단계를 실시해 상담 종료 후 5년 이상 자살을 시도하지 않은 경우를 '성공 사례'로 정의했다. 7건의 사례 분석을 통해 모델이 실제 임상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어디에서 좌절되는지를 드러내는 실천 근거(practice-based evidence)를 확보했으며, 유가족 및 자살시도자의 트라우마가 반복되는 구조를 '트라우마 뫼비우스' 도식으로 개념화해 자살시도 경력이 왜 가장 강력한 위험 요인으로 재현되는지도 함께 제시했다.
◆"자살" 대신 "자기살해"로 — 용어 전환을 제안하는 이유
논문이 던지는 핵심 제언 중 하나는 용어 자체의 전환이다. 김 박사는 인지적 환기를 무디게 하는 '자살'이라는 용어 대신, 행위의 심각성과 시간적 인지력을 높이는 '자기살해'라는 용어의 공론화를 제안했다. '자살(suicide)'이 오랜 사용으로 어감이 무뎌지고 완곡하게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는 반면, '자기살해'는 자신을 대상으로 한 가해 행위임을 직접적으로 드러내 위기의 심각성을 환기시킨다는 것이다. 이는 논문이 자살을 '자기살해(Self-Homicide)'의 과정으로 재개념화하고, 이를 임상에서 실천 가능한 절차로 구조화한 이유이기도 하다.
◆정책 제언 — 게이트키퍼 양성과 생명존중 교육 의무화
논문은 다음과 같은 정책·실무적 제언으로 마무리된다.
• 자살유발정보 차단을 위한 정부 전담 기구 출범: 현재 '지켜줌인' 등 봉사활동 수준에 머물러 있는 모니터링 체계를 전문가 중심의 정부 단독 공적 기구로 격상해 실시간 수집·통제 및 즉각 구조 연계 필요
• 생명존중 교육과 게이트키퍼 양성 교육의 전국민 의무화: 초등학교 1학년부터 학부모·교사에 이르기까지 대면 생명존중 교육을 정례화
• W(8단계, 사회적 위기개입) 단계의 내실화: 1~7단계 개인적 개입이 실효를 거두려면 국가 차원의 지속적인 연구와 재정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함
김 박사는 "자기살해 충동 역시 주체 자신도 그 이유를 인식하지 못한 채 작동하는 무의식의 산물"이라며, "정신분석 전문가의 위기개입이 8단계 모델 위에서 적절히 투입된다면, 죽음을 향해 폐쇄적으로 순환하던 충동의 회로를 삶충동(Eros)의 방향으로 전환시켜 보다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고 밝혔다.
[연구자 첨언] "자기살해"와 "자기말살/자기소멸" — 두 개념의 정신분석적 경계
논문의 결론에 덧붙여, 김 박사는 이번 연구에서 다룬 '자기살해(Suicide)' 개념과 이후 연구 과제로 남겨둔 '자기말살/자기소멸(Self-annihilation)' 개념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두 용어는 언뜻 유사해 보이지만 어원, 학술적·철학적 맥락, 사용되는 뉘앙스에서 명확히 구분된다.

자기살해(Suicide)는 라틴어 sui(자기 자신)와 caedere(죽이다)의 합성어를 풀이한 개념으로, 개인이 고의로 자신의 목숨을 끊는 행위를 직접적으로 지칭한다. '누가 누구를 죽였는가'에 초점을 맞춰, 자기가 자신을 대상으로 가해한 최종적이고 치명적인 신체적 행위를 의미한다.
자기말살/자기소멸(Self-annihilation)은 Self(자아, 자신)와 라틴어 nihil(무, Nothing)에서 유래한 annihilare가 결합된 개념으로, 단순히 숨을 끊는 것을 넘어 존재의 완전한 말살과 무화(無化)를 뜻한다. 즉 단순한 죽음 이상으로 '내 존재의 근본적인 파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정리하면, 자기살해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라는 명확하고 단일한 신체적·사회적 사건에 집중하는 개념이라면, 자기말살/자기소멸은 신체적 죽음을 포함하되 자아와 존재 전체가 우주 속에서 흔적도 없이 완전히 지워지고 무(無)로 돌아가는 상태까지 포괄하는 보다 확장된 개념이다. 김 박사는 이 개념적 구분을 정신분석적 논의로 정교화하는 작업을 향후 연구 과제로 남겨두었다고 밝혔다.
자기살해 충동이나 위기 상황과 관련해 어려움을 겪고 계시다면 자살예방상담전화(109) 등 전문 기관에 도움을 요청하실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