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100문
Q. What doth the preface of the Lord's Prayer teach us? A. The preface of the Lord's Prayer (which is, Our Father which art in heaven) teacheth us to draw near to God with all holy reverence and confidence, as children to a father, able and ready to help us; and that we should pray with and for others.
문. 주기도문의 머리말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 주기도문의 머리말(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은 우리를 돕기에 능력이 있으시고 준비가 되어 있으신 아버지께 자녀가 나아가듯, 거룩한 경외심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것과,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할 것을 가르쳐 줍니다.
ㆍ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마 6:9)
ㆍ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롬 8:15)
ㆍ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눅 11:13)
ㆍ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행 12:5)
ㆍ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딤전 2:1-2)

관계의 성격은 부르는 '호칭'에서 결정된다. 언어 철학자 마르틴 부버(Martin Buber, 1878-1965)는 인간의 존재 방식을 '나-너'(I-Thou)와 '나-그것'(I-It)의 관계로 구분했다. 대상을 도구로 보느냐, 인격으로 보느냐에 따라 존재의 가치는 완전히 달라진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100문은 기도의 시작을 여는 짧은 문장,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는 머리말을 통해 우리가 신과 어떤 관계망 안에 놓여 있는지를 선언한다. 이 머리말은 단순한 인사가 아니라, 기도자가 서 있어야 할 위치와 태도를 규정하는 영적인 좌표 설정이다.
먼저 '아버지'라는 호칭은 심리학적 관점에서 '안정 애착'(Secure Attachment)의 극치를 보여준다. 존 볼비(John Bowlby, 1907-1990)의 애착 이론에 따르면, 아이는 부모라는 '안전 기지'를 확보했을 때 비로소 외부 세계를 탐색할 용기를 얻는다. 기독교 신학이 말하는 하나님은 멀리 떨어져 관조하는 부동의 동자(Unmoved Mover)가 아니라, 히브리어 '아브'(אָב, 아버지)이자 헬라어 '파테르'(πατήρ, 아버지)로 불리는 친밀한 보호자다.
특히 바울이 사용한 '아바'(Abba)라는 아람어 표현은 유아적인 옹알이에 가까운 친밀함을 담고 있다. 이는 기도자가 신 앞에서 긴장하거나 위축될 필요가 없음을 시사한다. 우리는 이미 수용된 존재로서, 자녀가 부모에게 나아가듯 당당하게 우리의 결핍을 호소할 권리를 가진다.
그러나 이 친밀함은 자칫 경박함으로 흐를 수 있다. 이를 방지하는 장치가 바로 '하늘에 계신'이라는 수식어다. '하늘'은 장소적 개념이라기보다 초월적 권위와 전능함을 상징한다. 신은 우리의 다정한 아버지인 동시에 우주를 통치하는 주권자다. '코람 데오'(Coram Deo, 하나님 앞에서)가 주는 긴장감은 여기서 발생한다.
친밀함이 '사랑'을 담보한다면, 초월성은 '능력'을 보증한다. 나를 지극히 아끼는 이가 동시에 압도적인 자본과 해결 능력을 갖춘 의사결정권자인 셈이다. 이 두 가지 속성의 결합은 기도자에게 '거룩한 경외심'과 '확신'이라는 균형 잡힌 감정을 선물한다.
흥미로운 점은 기도의 시작이 '나의 아버지'가 아닌 '우리 아버지'라는 것이다. 현대 사회는 극단적인 개인주의와 고립으로 치닫고 있다. 각자도생의 사회는 높은 사회적 비용과 불신을 초래한다. 그러나 소요리문답은 기도를 개인의 골방에서 멈추게 하지 않고 '우리'라는 공동체적 지평으로 확장한다.
기도는 고립된 자아의 독백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과 필요를 내 기도 안으로 초청하는 연대(Solidarity)의 행위다. '우리'라고 부르는 순간, 나의 기도는 이기적 욕망을 넘어 타인을 향한 중보와 공적 책임으로 나아간다. 이는 기업 경영에서 말하는 공유 가치 창출(CSV)이나 상생의 리더십과 궤를 같이한다.
또한 소요리문답은 하나님이 우리를 돕기에 '능력이 있으시고 준비가 되어 있으신 분'임을 명시한다. 이는 불확실성의 시대를 사는 현대인에게 가장 강력한 복음이다. 인간의 불안은 자원의 고갈이나 통제 불능 상태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기도의 머리말은 무한한 자원을 가진 아버지가 우리를 돕기 위해 '대기 중'(Ready)임을 선포한다. 이러한 확신은 기도를 중언부언하는 주문이 아니라, 신뢰에 기반한 정교한 요청으로 바꾼다. 기도는 신의 마음을 돌리는 설득이 아니라, 이미 열려 있는 신의 마음 안으로 뛰어드는 용기다.
주기도문의 머리말은 기도자의 정체성을 재정의한다. 우리는 고아가 아니며, 우연의 산물도 아니다. 우리는 하늘의 통치자를 '아빠'라 부를 수 있는 우주적 특권을 가진 자녀들이다. 이 짧은 고백 속에서 수직적인 경외심과 수평적인 연대가 만난다. 기도는 이 호칭을 부르는 순간 이미 절반은 응답된 것이나 다름없다. 관계가 올바르게 설정되었다면, 그 뒤에 따르는 요구들은 자연스러운 흐름이 되기 때문이다.
기도의 첫 문장을 뗄 때, 그 '우리 아버지'라는 단어가 고립된 영혼을 흔들어 깨우고, 거대한 은혜의 연대 속으로 밀어 넣기를 바란다.
허동보 목사(Rev. Huh Dongbo) | 수현교회(Suhyun Church)
저서 | 『왕초보 히브리어 펜습자』, 『왕초보 헬라어 펜습자』, 『왕초보 히브리어 성경읽기』, 『고난, 절망의 늪에서 피어난 꽃』, 『부와 기독교신앙』, 『그와 함께라면』, 『만남』, 『AI시대, 히브리어로 답하다』 외
















